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저자는 지난 몇 년 동안 융심리학에 푹 빠져 살았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는 그동안 저자 본인이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자신에게 적용해 온 심리학 이론들을 문학이라는 감동과 함께 전함으로써 독자가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특별한 글쓰기를 시도했다. 무엇보다도, 융심리학의 핵심인 자신만의 ‘그림자’를 찾아낼 것을 주문한다. “융에게 그림자란 자기 안의 ‘열등한 인격 부분’이었다. 우리 자신의 결핍, 콤플렉스, 트라우마, 집착, 질투, 분노, 이기심과 관련된 모든 부정적인 사실들이 그림자의 세포를 구성하고 있다.”
융의 『인간과 상징』을 읽은 후, 나는 실제로 그런 글을 써보았다.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을 헤아리며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나만의 리스트를 적어 보았다. 시작할 땐 ‘외부의 살생부’였는데, 끝내고 보니 ‘내면의 트라우마’ 목록이었다. 나는 타인을 향해 분노를 쟁여두면서, 실은 내 자신의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속절없이 곱씹고 있었다. 그 ‘혐오 대상 목록’을 소리 내어 읽어보니 낯 뜨거웠지만, 은밀한 쾌감이 솟아나기도 했다. 내 안의 어떤 부분, 오랫동안 짓눌려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던 부분이 풀려 깨어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융이 말하는 ‘그림자(shadow)’다. 나는 그렇게 그림자의 세계에 입문했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 정여울 지음/민음사 |
둘째, 저마다 다른 나만의 억눌린 무의식을 찾을 것을 주문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차원에서는 우리 모두가 서로 비슷하다고 주장한 반면, 융은 인간의 개성을 서로 다른 무의식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성욕의 동질적 메커니즘을 강조한 프로이트는 모든 사람들을 ‘욕망’의 차원에서 기본적으로 똑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지만, 성욕을 인간의 수많은 욕구 중 하나로 상대화한 융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지니고 있는 무의식의 ‘차이’였다. 바로 이 무의식의 개성, 나도 모르고 있던 나의 발견이야말로 심리학의 경이로움이고 문학의 아름다움이며 사랑의 기적이다.
셋째, 저자는 이처럼 융이라는 현미경을 통해 복잡하게 꼬인 감정들의 근원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안톤 체호프, 서머싯 몸, 호메로스 등 인간의 심리를 파고들었던 위대한 작가들의 문제의식을 융 심리학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예를 들어, 융은 “사랑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권력이 없으며, 권력이 지배하는 곳에는 사랑이 없다.”고 말했다. 사랑을 융의 언어로 풀이하면 ‘드높은 산맥’, 즉 “이제 다 올랐다 싶으면 어느새 그보다 훨씬 더 높은 또 다른 봉우리를 보여 주는 험준한 산맥”이다.
모두가 사랑을 잘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랑의 비밀은 이렇듯 우리의 모든 확신을 비웃는다. 사랑이란, 이제 사랑에 대해서라면 좀 알겠다고 확신할 때쯤 어느새 믿을 수 없이 낯선 얼굴로 돌변하는 그 무엇이다.